가을 낙엽이 비와 함께 바닥을 적시는 초겨울 날씨가 훌쩍 다가왔다. 2020년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재단이 만난 11월의 양천문화예술인은 양천구민이자 무용가 그리고 학교 예술 강사 고상아 선생님이다.
고상아 선생님은 재단에서 학교, 마을 예술 강사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예술 강사, 예술로 치유하고 성장하기” 프로그램 참여자다. 양천구 내에서 활동하는 각기 다른 장르의 예술 강사들이 모여 그림, 움직임, 글쓰기 등 예술 치유 작업을 통해 스스로를 돌보고 타인을 이해하고 집단으로 나아가는 작업을 지속한다. 단순 치유 프로그램을 떠나 예술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예술 강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그녀를 만나러 갔다. 흐린 날 속 밝은 얼굴로 재단을 맞이해주는 그녀를 보니 쌀쌀한 날씨 속 살짝 움츠렸던 기운이 풀어지는 듯했다. 늘 그렇듯 나를 소개하는 세 가지 단어로 자기소개를 부탁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저는 커넥티드 띵킹을 하는 사람,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와 저라는 사람 두 역할에서 모두 잘 해내고 싶은 사람입니다.”
고상아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건 단순한 무용이라는 장르 예술가 외에 흥미로운 이력을 들었기 때문이다. 선화예술 중, 고등학교에 이어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졸업한 이후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을 졸업했다. 무용 전공자가 전공과 크게 관계가 없어 보이는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대학교에 진학했을 때 예술과 기술과의 융합이라는 단어가 한창 대두되고 있었어요. 무용수나 안무, 무대 연출만 하다가 예술과 기술 융합 심포지엄에서 무대에 설 기회가 있었습니다. 3D 프로젝션 매핑, 미디어, 로봇과 함께 무대에 서 춤을 췄어요. 무용이라는 장르에만 갇혀 있던 제게 너무 놀라운 경험이었죠. 그 이후로 과학 기술 분야와 협업작업을 하면서 시야가 확장되었습니다. 예술과 과학 기술과의 시너지를 보며 가슴 떨림을 느꼈어요.”
“처음 무용을 하고 대학원을 진학할 때 사람들이 무용을 그만두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했는데 사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신체 움직임에서는 누구보다 잘 아니까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오히려 그것이 저만의 무기이자 재료가 되었어요. 연구하면서 기술력의 범위를 실험할 때 저의 움직임이 많이 활용되었어요.”
“아이들에게 예술교육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요”
그녀는 전공 외에도 교수법에 관심이 많아 ‘가상환경기반의 발레교육을 위한 발레기본자세 분석에 관한 연구’ 논문을 쓰고 연구를 진행했다.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육아에 전념한 시간이 있었지만 둘째 아이가 걸음마를 떼며 그녀도 다시 뛸 준비를 했다. 외부에서 레슨을 하고 올해 양천구 학교에 출강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19로 아쉽게도 학생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무대 위의 퍼포머도 좋지만 무대 뒤의 지도자, 조력자의 역할을 했을 때 더 보람을 느꼈어요.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좀 더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경험을 주고 싶어요. 열린 마음을 갖고 친구들과의 협력, 소통 능력을 향상하게 시키는 것이 실제로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작품을 만든다든지 다른 장르와 접목을 하면서 경계를 뛰어넘고 융합적으로 사고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그런 교육 프로그램을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싶어요.”
“양천구는 문화 예술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된 곳입니다”
6년째 양천구에 살면서 그녀는 양천구에 그녀만의 예술지도를 그리고 있다. 도서관 외벽, 공원 등 구민들이 지나가고 쉬는 공간에서 간단하게라도 미디어 기술이 구현되고 공연이나 전시가 있는 그런 문화가 있는 도시를 상상하고 있다.
“양천구는 문화 예술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열도 뛰어나고 인재들도 많고요. 학부모도 학과 공부를 떠나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은 욕구가 많아요. 그걸 지역사회 안에서 해결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구청과 문화재단의 시너지를 발휘하면 다른 지역에서도 따라 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예술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 예술 강사로서 그녀는 아이들에게 예술과 타 장르와의 접목을 통해 열린 마음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도와주고 싶다고 말한다.
“앞으로 제가 배운 것을 교육 과정에 잘 녹여서 가르치고 싶어요. 여건이 된다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지역사회에 차츰차츰 녹여내며 영역을 넓히고자 합니다.”
생생하고 맑은 그녀의 미소에서 교육에 대한 열정,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어봤다.
“르네상스가 문화예술이 가장 화려하게 꽃폈던 시기라고 말하잖아요. 코로나 19 시대에 이곳 양천구라는 지역에서 문화예술이 화려하게 꽃피어졌으면 해요. 그래서 사람을 치유하고 움츠린 몸을 기지개 켤 수 있는 다양한 사업과 다른 기회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