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으로 일교차가 큰 걸 보니 확실히 가을이 왔나 보다. 하늘은 높고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아직은 조금 더운 9월의 어느 날, 햇빛을 가르는 시원한 웃음을 안고 만난 오늘의 양천문화人은 양천구 마을 미디어 줌인네거리 이호경 대표다. 줌인네거리는 2018년 2월 ‘신정3동 마을 미디어 교실’ 수료생들이 모여 개국한 마을 방송국이다. 구민들의 이야기를 줌인(zoom-in)을 읽으면 ‘주민’이라는 소리가 나 흥미롭다는 생각에 방송국 이름을‘줌인네거리’로 정했다고 했다.
“저희는 그저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에요”
이호경 대표는 줌인네거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 방송은 주민이 직접 참여해요. 전공하신 분도 계시지만 그저 찍고 싶고, 말하고 싶은. 미디어에 관심 있는 주민들이 모여서 기획하고 마을 이슈를 담는 마을공동체 미디어입니다.” 이호경 대표는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줌인네거리는 단순 주민들의 모임을 넘어 이제는 콘텐츠를 기획, 제작하는 주체이자 구민 대상으로 미디어 교육을 진행, 취재 요청을 받는 등 양천구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줌인네거리는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에서 오디오 콘텐츠 제작을 시작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신정3동 김기순 통장의 입을 통해 마을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오토바이 통장 김기순], 풀밭과 농사가 어우러진 농사 이야기 [똥 살리고 땅 살리고], 커피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알려주는 [커피이야기], [톡톡(talk talk) 쉬운 영어 그림책의 발견] 등 10여 개의 팟캐스트 콘텐츠가 활발하게 업로드되고 있다. 최근에는 유튜브로 라이브를 하거나 청소년 기자단 교육을 통해 제작한 [양천구 청소년 기자단 뉴스]. 지역 민주주의 관련 인물을 인터뷰 [양천의 품격]을 제작하며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미디어 교실 수료 후 수료생들과 ‘전문가는 아니지만, 우리도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모여 줌인네거리를 만들었어요. 무식한 열정이랄까요? 하하.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비영리 단체 등록도 하고 교육도 하며 줌인네거리를 계속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오는 데 절대 쉽지는 않았어요.”
처음 ‘줌인네거리’가 개국했지만 정작 방송 제작을 위한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개국 초반 줌인네거리는 신정동의 한 작은 도서관을 빌려 방송을 진행했다. 회비를 걷어 장비를 구입하고 공용 공간이다 보니 방송을 할 때마다 장비를 설치하고 치우기를 반복했다.
“우리만의 온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정말 애썼던 것 같아요. 설득해야 할 사람도 많았어요. 하지만 마을공동체와 미디어 문화에 관심을 가진 많은 분의 힘으로 저희는 성장할 수 있었고 2019년에는 방송실도 갖게 되었어요. 줌인네거리를 만든 후 대표로서 마을에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무조건 찾아가서 명함도 돌리고 홍보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때는 마을 단체 행사를 가리지 않고 다 참여했죠. 지금까지 홍보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줌인네거리를 모르시는 분들을 만나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이웃을 알아가게 만드는 방송을 만들고 싶어요”
한 언론 기사에서 이호경 대표는 줌인네거리 운영에 위와 같은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녀의 얼굴에는 마을공동체와 사람에 대한 애정이 서려 있다. 양천구 주민자치위원으로도 활동하며 마을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나누고 실행하는 것 그 자체가 힐링이고 즐겁다고 했다.
“저는 늘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에요. 호기심이 많아요. 사람들에게 자꾸 질문하고 소통하려 하죠. 실제로 그 궁금증이 콘텐츠가 될 때가 있어요. 요즘엔 세대 간, 이웃 간 소통에 관심이 커졌어요. 특히 2, 30대 젊은 세대들이 말하는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들으면 너무 놀랍니다. 4, 50대분들은 경험이 많다 보니 실행력이 좋습니다. 두 다른 세대가 결합하면 정말 엄청난 시너지가 있을 거 같아요.”
그녀는 호기심이 많은 만큼 자신이 하는 일과 마을 미디어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이호경 대표는 줌인네거리 방송을 단순한 주민들의 ‘즐거운 활동’을 넘어 ‘주민이 만드는 역사적 자료’를 기록하는 역할을 하는 거라 말했다.
“저희는 마을 미디어 방송도 역사적인 자료가 된다 생각해요. 꼭 원대하고 특별한 사건이 있어야만 역사적 자료가 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마을 주민의 소소한 이야기를 직접 전하고 주민들이 직접 담아내는 것도 역사적 자료가 되는 거죠. 팟캐스트는 듣는 자료, 영상은 보는 자료. 그런 자료들을 차곡차곡 보관하면서 기록하는 방송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는 공영방송이 할 수 없는 미디어의 또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양천구의 보이지 않는 인재도 찾고 싶고. 무형문화재에 가까운 분도 발굴해보고 싶습니다. 숨은 보석을 찾는 거죠. 하하.”
“저는 아직도 양천구를 공부 하고 있어요”
이 정도면 이호경 대표를 양천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양천구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는 아직도 양천구를 공부하고 있어요. 제가 아직 모르는 마을 단체나 공간들이 많더라고요. 최근에 목2동을 갔는데 공방을 비롯한 여러 문화 공간들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양천구에 이런 멋진 공간이 있었다니! 그래서 항상 배우는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려 합니다.”
마을에 대한 애정과 지지치 않는 열정으로 끊임없이 달려온 지금, 양천구 미디어 문화를 만드는 줌인네거리의 향후 계획을 물었다.
“단순 지역 이슈나 광고를 담는 방송과는 차별성을 가지는 것이 마을 미디어 활성화를 위한 방향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기획을 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마을을 잘 알리는 것만큼 주민들의 참여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마을에 관해 관심이 커지면 지역 참여가 늘고 자연스럽게 양천구에 살고 싶어지는 마음도 커지지 않을까 싶어요. 마을 미디어를 통해 양천구를 ‘살고 싶고 이사 오고 싶은 동네’가 될 수 있게 노력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양천문화재단과의 협력이 중요할 거 같아요. 아직 줌인네거리는 문화예술에 대해 제대로 다루질 못했거든요. 그리고 양천구는 아직 양천구를 ‘목동’, ‘교육의 도시’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에 문화를 더하면 그 이상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양천문화재단이 양천구를 행복한 문화도시로 만들어 줄 수 있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코로나 19 상황이 좀 더 나아지면 줌인네거리와 함께할 기회를 마련하면 좋겠어요.”
줌인네거리가 만드는 우리 마을 소식이 궁금하다면 팟빵과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이 글은 줌인네거리의 ‘오토바이 통장 김기순’이라는 콘텐츠를 들으며 쓰고 있다. 입담 좋은 통장님의 마을의 소소한 얘기,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가 귀에 쏙쏙 박힌다. 그런 이야기가 역사가 되는 곳, 줌인네거리의 활발한 활동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