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교사인 인공지능 로봇, 그리고 식당에서 일하는 평범한 할머니. 범상치 않은 캐릭터를 추리와 스릴러와 에스에프 장르에 버무려 새 소설을 투척한 젊은이가 있다.
만 스물네 살, 이희준 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나날이 뜨거워지는 6월 한가운데에서 이희준 작가를 만났다. 이희준 작가는 인터뷰가 쑥스러운 듯 발그레한 미소를 지었다.
“인터뷰하자는 전화를 받았을 때 놀랐어요. 제가 쓰고 싶어서 쓴 소설일 뿐인데…. 숭실대 철학과 15학번이고, 2016년부터 2018년까지 2년 넘게 소설 쓰기에 매달렸어요.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걸 소설로 옮기는 게 무척 재미있었어요.”
이희준 작가는 대학 학부 과정을 3학년까지 마치고 지금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진 양천구에서 태어나 양천구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그야말로 이 지역 젊은이다. 아파트 단지와 반듯반듯한 대로가 그가 살아온 터전이지만 그에겐 낭만적인 기억이 스며 있다.
“제가 신정동에 사는데 목1동에 있는 교보문고까지 가는 길을 제일 좋아해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이 세세하게 마음속에 다가와요.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교보문고까지 걸어가서 책을 사곤 했어요.”
“소설의 초고부터 탈고까지, 그 이야기가 궁금해요.”
이희준 작가가 낸 책의 제목은 <로봇교사>. 인공지능 로봇으로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는 가우스가 주인공이다. 가우스는 자신에게 탑재된 시스템에 맞춰 원칙을 준수하는 성실한 로봇이지만 자신을 옥죄어오는 뜻하지 않은 일을 겪으며 능동적인 해결사로 변모해나간다. 이와 함께 주요 등장인물로 중학생 아이들의 캐릭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아이들은 거친 말을 내뱉고 자주 분별없이 행동하지만 다른 행동 방식을 배우지 못한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캐릭터들을 어떻게 창조하게 됐을까?
“맨 처음 착상은 로봇이 나오는 소설을 써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장르적으로 접근하고 싶었죠. 캐릭터들을 만들면서 개성을 부여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제가 인물들을 창조한다기보다는 각 캐릭터가 하는 말을 받아 적는다는 생각으로 써나갔지요. 주인공인 가우스나 주요 등장인물 모두에게 제 모습이 하나씩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동네와 거리로 뻗어나가며 좌충우돌 사건을 낳고, 미혹에 빠진 인물들은 한 줌 욕망을 품은 채 사건의 진상을 향해 나아가려 애쓴다. 젊은 작가는 추리 장르에 성장소설의 얼개를 갖춘 이 작품을 쓰면서 자신의 청소년기를 씻어내는 의식을 하지 않았을까?
“이 소설에는 제 청소년기가 녹아있습니다.”
“꼭 메시지를 중시한 건 아니에요.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경험을 자연스레 녹여낸 것 같아요. 저를 둘러싸고 있던 공기를 생생히 되살려보고 싶었어요. 청소년들은 자기 꿈을 찾을 기회가 없어요. 어른들이 몇 개의 직업 중에 고르라고 하니까요. 판검사, 의사, 공무원, 회사원이 돼라, 아니면 ‘노가다’밖에 할 게 없다, 어른들 생각은 그래요. 실제로 가능한 직업은 1만 개라는데요.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나가지 못하고 어른들의 시각을 강요당하죠. 저는 성장소설을 좋아해요. 보통 아이가 갈등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성장소설이라고 하죠. 저는 교사가 오히려 학생의 경험을 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썼어요. 그 바탕엔 제 청소년기 경험이 있고요.”
이희준 작가가 쓴 소설은 200자 원고지 2천 장 분량이다. 2년이 넘는 시간을 기울여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마침표를 찍었다. 그 정열과 끈기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쓸 계획인지 물었다.
“제가 읽었을 때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들을 읽고 이야기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며 첫 소설을 썼어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소설을 마친 것 같아요. 글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이 진심으로 재미있게 읽으면 다른 사람도 그럴 거예요. 전 장편소설의 무게감을 좋아하니까 두 번째 소설도 아마 장편을 쓸 거예요. 인물들이 위기를 넘기며 변화하는 이야기를 구상 중이에요.”
이희준 작가는 시종일관 침착함 속에 의지를 감춘 눈빛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딘 젊은 소설가. 앞으로 어떤 소설로 독자에게 다가올지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