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예고하는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6월 한낮에도 차분한 서늘함을 머금은 장소가 있다. 그곳은 극장이다. 사람이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진 장소. 양천문화회관 해바라기홀도 그런 장소 중 하나다. 아담한 규모에다 무대의 형태가 친근해 구민들이 접근하기 쉬운 이곳에서 김귀철 지휘자를 만났다.
김 지휘자는 2019년 창단한 양천구립실버합창단의 화음을 이끌어내는 임무를 맡고 있다. 양천구와 맺은 인연은 훨씬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양천구립합창단 지휘자로 임명되면서 12년 동안 양천구의 대표 문화사절단으로 활약해왔다.
“제가 합창단 지휘자가 된 건 어쩌면 필연인 것 같아요.”
“제가 합창단 지휘자가 된 건 어쩌면 필연인 것 같아요. 어머니가 성가를 좋아해서 뱃속에서부터 노래를 듣고 컸거든요. 중고교 시절엔 교회 성가대 활동을 했는데 무척 재미를 느꼈어요. 대학 성악과에 진학해 4년 동안 대학 합창단 생활을 하며 합창에 눈이 떴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합창 지휘를 전공했으니 제 음악 인생이 곧 합창인 셈이지요.”
합창은 두 사람 이상이 다성악곡의 각 성부를 맡아 노래하는 가창 형태로 보통 수십 명이 함께한다. 김귀철 지휘자는 민간 프로 합창단과 관립 합창단의 단원으로 무대에 선 경력이 있고, 지휘자로 활동하면서부터는 여러 굵직한 합창단의 예술적 성취를 이끌어내며 지금까지 왔다. 오랜 세월 합창단을 이끌어온 경험은 어떤 것일까?
“합창은 수십 명 단원이 가진 개성 있는 소리를 조화롭게 통일하는 게 핵심이에요. 누구 한 사람이 잘하는 것으로는 안 되지요. 각자가 자기 소리를 절제해서 다른 사람의 소리에 맞춰야 하고 내 소리 볼륨을 낮추고 상대방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상당한 시간을 들여 연습해야 해요. 소리 만들기 훈련도 다양하게 해야 하고요. 기본적으로 네 파트로 나눠 노래하지만 더 예술적으로 들어가면 여덟 파트, 열여섯 파트로 나눠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연습을 해야 하는 만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죠. 구립합창단은 임원 조직도 중요한 일이에요. 회장, 총무, 회계, 파트장 등이 맡은 책임을 해야 하므로 예산이 잘 뒷받침되어야 하죠.”
“양천구는 합창과 함께 탄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천구는 합창과 함께 탄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5월 양천구청이 개청하면서 발족한 양천구립합창단은 양천구의 각종 문화행사에 출연하고 해마다 정기발표회를 개최하면서 구민들에게 밝은 음악과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주었다.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합창단을 남성 지휘자가 이끄는 데는 각별한 노력도 필요했을 것 같다. 음악가다운 굽이치는 헤어스타일을 한 김귀철 지휘자는 빙긋이 웃으며 여성 합창단과 혼성 합창단의 차이를 들려주었다.
“여성 합창단은 여성의 정서에 중점을 두어 운영하면 됩니다.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 세 성부로만 악보를 구성하면 되고 단복도 여성 취향에 맞추면 되죠. 그런데 이번에 단원을 모집한 양천구립실버합창단은 혼성이므로 악보도 복잡하고 단복, 연습 정서 같은 것이 여성 합창단과 다를 수밖에 없어요. 남녀가 함께하니까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지요. 여성 합창단과 혼성 합창단의 가장 큰 차이는 소리의 다양성입니다. 여성과 남성의 소리가 합쳐져 더 강렬하고 다양한 색깔의 소리를 낼 수 있어요.”
“이분들이 소망을 충족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요.”
올 초 단원을 추가로 선발해 여성 35명, 남성 10명으로 알차게 단원을 꾸린 양천구립실버합창단은 12월에 창단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어느 정도 세상살이를 경험하며 삶의 지혜가 영글었을 실버 세대는 어떤 소리의 화음을 들려줄까? 12년 동안 양천구립합창단을 이끌어온 노련한 경험을 토대 삼아 앞으로 실버합창단의 화음을 창조할 김귀철 지휘자에게 마음가짐을 물었다.
“실버합창단원은 대부분 경제활동, 자녀교육, 부모 봉양이라는 책임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이분들이 소망을 충족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요. 이제 출범한 만큼 단원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첫째로 할 일이고요, 그다음엔 노래를 잘 부르도록 기초 발성 연습부터 차근차근 진행해나가려고 해요. 연습기간을 충분히 거친 다음 본격적으로 창단 연주회, 관내 행사 출연, 자선음악회, 찾아가는 음악회, 국내외 합창 경연대회 같은 무대에 설 것입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단원 자신들이 삶의 활력소를 찾고 양천구 홍보사절로서 임무를 해나가도록 도울 생각입니다.”